믿자 ACTION!!! 웃자 ACTION!!!

문정일 원로 교사 칼럼 3편



61.흑인이 먹는 ‘영혼의 음식’
[[제1616호]  2018년 10월  27일]

20 , 안식년으로 캘리포니아에서 1년간 머무는 동안 감리교단의 선윤경(宣允景,  Peter Sun, 1934~ ) 목사님을 이웃에 모시고 지낼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다시없는 행운이었다. 목사님은 1960년대 초에 유학차 도미하여 미국 동부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동부 감리교단에서 30 년간 목회를 하시다가 60세가 되던 해에 조기은퇴하시고 나서 10 년간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카운티에 은거하시다가 기력이 쇠해지시면서 지금은 동부지역에 있는 자녀들과 함께 살고 계시다.

안식년을 보낸 동안 매일 새벽, 바닷가 산책을 함께 하면서 목사님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캘리포니아의 대부분의 명소를 친히 안내해 주신 덕분에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많은 공부를 있었으니 이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 이따금 전화통화라도 하게 되면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장로, 바닷가 새벽 산책 마치고 바닷가 맥도날드 창가에 앉아서 출렁이는 바다를 내다보며 즐기던 에그머핀과 커피 한잔의 추억을 매우미스(miss)하고 있어요.

번은 목사님을 따라 흑인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은 그날 특별히 흑인교회에서 1년에 번씩 '영혼의 음식' 먹는 의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식은 외형상으로는 개신교의 성찬식과 유사한 의식이지만 흑인들에게는 깊은 의미가 있다. 자기네 조상들이 노예시절에 먹던 음식을 기억하고 옛날의 그것과 같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조상이 겪었던 아픔을 직접 몸소 체험하면서 민족애를 고취하고 아울러 자유의 몸이 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옛날 노예 생활을 하던 조상들이 백인들이 잡아먹고 버린 돼지의 내장을 흐르는 개울물에 씻은 다음, 역겨운 냄새가 나도록 특정한 [] 함께 넣고 끊여서 국물을 먹는 의식이다. 사람씩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집례하는 목사가 떠주는영혼의 음식' 받아먹는 것이다. 영혼의 음식'이란 짐승들이 먹는꿀꿀이 ' 같은 것인데 음식 속에 자기네 조상들의 영혼이 살아 쉬고 있으며 노예 신분으로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던 선조들의 얼과 정기가 맥맥이 흐르고 있는 그런 음식이기에 그들은 감사와 감격 속에영혼의 음식' 먹는 예배의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 목사님은 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으나 나는 음식을 받아먹다가 본의 아니게 실수를 것만 같아 의식에는 참여하지 않고 시종옵저버' 자격으로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음식의 냄새가 하도 역하고 비위가 상해서 너머로 넘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목사님은 의식에 참여하시고 나서 힘주어 말씀하였다. 흑인들이 비록 오랜 동안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 왔고 아직도 상처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지만 이들이 진정 잠재력이 있는 민족이요, 흑인교회가 활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이유와 그들 특유의 믿음의 열기의 근거를 확인할 있었다고 했다.

흑인교회의 예배의식은 설교자나 회중이 모두 일어서서 양손을 높이 쳐들고 몸을 흔들면서 교회당의 마루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추는 모습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던 자신들을 하나님이 자유케 하셨는데 감격을 생각하면 어떻게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릴 있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배 자체가 감사와 은혜의 표현이요, 간증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목사님의 자책과 충고가 이어진다. 우리도 자만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해마다꽁보리 주먹밥'이나개떡' 같은 우리 나름의영혼의 음식' 통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다질 뿐만 아니라, 신앙을 바탕으로 , 흑인들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배워 나아가야 합니다.


58.우리집 이산가족 상봉이야기
[[제1609호]  2018년 9월  8일]

1989년 여름방학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3 4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일이 있었다. 서울 도봉구 미아동집의 문을 열고 마루에 올라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황급히 받고 보니 ‘중앙정보부’라고 하면서 “문정일 씨 댁이 맞느냐”고 다그친다. 그렇다고 했더니 왜 여러 날 동안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다소 질책성의 목소리다. 전 가족이 사나흘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그간 여러 날 우리 집에 전화를 걸었던 사연을 말해 주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1988년 하계올림픽경기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해외동포들의 조국방문 프로그램을 추진하였는데 러시아 교포일행을 인솔한 분이 나의 장모님 ‘지희순[池熙順, 1906~1984)’ 씨를 찾아서 컴퓨터를 조회해 보니 사망으로 되어 있고 장남은 미국으로 이민, 차남도 미국으로 이민, 장녀를 검색해 보니 사망, 차녀를 조회해 보니 경기도 광주의 문정일과 결혼, 문정일의 본적지 면사무소로 전화했더니 서울 미아동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고 했다. 여러 날 동안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아 미아동 전화국으로 “이 전화가 현재 사용 중인 전화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여 오늘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겨우 저녁 나절에 통화가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분은 김순이(金順伊) 씨인데 나의 장모님, 지희순 권사가 자신의 이모라고 하였다 한다. 연락처를 확인하기 위하여 순서대로 가족을 수소문하는데 일주일이 지나갔고 이분이 다음날 오후에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야 하므로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워 도와드리느라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고 부연설명을 하였다. 그나마 자신이 중앙정보부 직원이어서 이렇게 인적사항을 샅샅이 추적할 수가 있었다고 상황 설명을 하면서 김순이 씨의 숙소는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공원 근처의 호텔이라고 하였다. 1906년생이신 장모님은 15, 6세 때에 미국인 여선교사의 주선으로 가족이 함께 살던 러시아 시베리아 연해주(沿海州)를 떠나 서울로 유학, 배화고등여학교를 1회로 졸업을 하셨다고 들었다.  

아내와 나는 그날 저녁 황급히 서둘러 호텔로 가면서 그분에게 무엇을 가져다드릴까 하고 의논 끝에 당시 러시아에는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소문을 듣고 각종 양념과 조미료, 그리고 인근 상점에 들러 라면종류 몇 박스를 사서 대형 가방에 담고 장모님이 쓰시던 일기장과 보관해 오신 옛날 연해주의 가족사진을 챙겨서 김순이 씨가 기다리는 호텔로 달려갔다. 우리가 가져간 것과 꼭 같은 사진을 그분도 가지고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순이 씨는 모스크바대학 사범대학 출신으로 러시아동포 조국방문단의 인솔책임을 맡은 덕분에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방문단 일행을 안내하는 중앙정보부 직원에게 사람을 찾아달라고 매달렸더니 그분이 적극 도와주어서 아슬아슬하게나마 이렇게 그리운 친척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며 고마워하였다.

김순이 씨의 조카딸 ‘신 이리나(Irena Shin, 1941~ )' 씨는 세인트피터즈버그(St. Petersburg)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있다고 하였다. 러시아에 있는 이리나 씨와 통화, 왕복비행기표를 보내어 그를 한국으로 초대했었다. 이리나 씨가 한국에 머무는 약 3주 동안 LA의 큰 처남 유지식(柳池植, 1929~ ) 연세대 영문과 교수도 내한, 합류하여 경주를 비롯, 한국의 명소를 함께 여행하면서 가슴 아픈 회한(悔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가 있었다.

2015년 이후 3년 만에 지난 한 주간 동안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1 50명씩 2차에 걸쳐 각각 2 3일로 100명의 이산가족의 상봉행사가 열렸다. TV를 통해서나마 우리는 다시 한 번 남북이산가족의 애환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산가족상봉과 관련하여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선 이산가족 간에 자유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전화로나마 자주 그리운 목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속히 다가오기를 학수고대해 보는 것이다.


57.커피는 ‘셀프’입니다
[[제1607호]  2018년 8월  25일]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으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에 대하여 적합한 우리말에 상당(相當)하는 어휘를 발굴하여 정착시키는 일은 언어교육을 담당한 관계 당국이나 전문가들이 꾸준히 쉬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야 과제이다.

고속도로 양쪽에 있는 《갓길》을 영어로는 《어깨》를 뜻하는 단어 《쇼울더(shoulder)》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말을 차용하여 《길가의 어깨》라는 뜻으로 《노견(路肩)》으로 불러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경부고속도로가 처음 생기고 직후에 한동안 《길어깨》란 말을 사용해 왔으나 《길어깨》가 일본어 《노견》을 직역한 말이어서 왜색이 짙게 풍긴다는 이유로 《갓길》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언어 구사력의 마법사, 이어령(李御寧: 1934~ ) 교수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갓길》은 아주 적절한 우리말 어휘가 아닌가 한다. 고속도로가 갈라지는인터체인지(IC) 우리말로는 한동안 《교차로》로 부르던 것을 다시 《나들목》이라고 고쳐 번역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용어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동차가 《나가고 들어오는 길목》을 간결하게 《나들목》으로 축약한 말이니 얼마나 재치가 돋보이는 용어인가!   

벌써 40 전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S고등학교에서 당시 한글학회 이사 한갑수(韓甲洙, 1912~2004)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교사 연수회가 있었다. 그분은 연수회 강연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미있는 일화 가지를 소개해 주었다. 연수회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 서울여자대학교 고황경(高凰京, 1909~2000) 총장의 초청을 받아 갔다가 주고받은 대화를 공개한 것이다. 서울여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당 벽에는 여러 군데에 <물은 셀프서비스>라고 적힌 글을 보면서 고황경 총장이 한갑수 선생에게 물었다 한다. 선생님, 셀프서비스 우리말로 표현할 없나요?” “우리말에제시중 제가 들지!하는 말이 있으니 시중 어떨까요?그날 일화를 소개하는 선생께서도 시중이란 용어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40 년이 흘러갔는데 아직도 요즈음에 식당에 가보면 벽에는 여전히 《물은 셀프》, 《커피는 셀프》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셀프서비스》가 《셀프》로 줄어들었을 《셀프》란 용어가 아직 토착화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생긴 죠크가 있다. 물을 영어로 뭐라고 ~?라고 질문을 하면 정답은 《셀프》라 한다. 물은 셀프라는 게시용어에 객기를 담아 만들어 이른바 넌센스 퀴즈이다. 아직 검증의 단계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이상야릇한 많은 외래어가 우리말로 고쳐지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드레싱=맛깔 (2)로고송=상징노래 (3)무빙워크=자동길 (4)브랜드파워=상품경쟁력 (5)블로그=누리사랑방 (6)블루투스=쌈지무선망 (7)선팅=빛가림 (8)스팸메일=쓰레기메일 (9)스타일리스트=맵시가꾸미 (10)엑스파일=안개문서 (11)오프라인=현실공간 (12)올인= 걸기 (13)옴부즈맨=민원도우미 (14)와이브로=휴대누리망 (15)원톱=홀로주연 (16)웰빙=참살이 (17)이모티콘=그림말 (18)콘텐츠=꾸림정보 (19)키보드=글자판 (20)파파라치=몰래제보꾼 (21)포스트잇=붙임쪽지 (22)호스피스=임종봉사자 등등이다. 여기에다 위에서 말한셀프=손수’ ‘셀프서비스=제시중/손수하기등이 포함되면 좋을 같다.

언어도 생명체처럼 새로 생겨서 사용되다가 소멸되는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언어가 생성이 되면 말이 합리적으로 사용될 있도록 다듬어서 사용하고 외래어인 경우에는 적절한 우리말로 번역해서 일상생활 용어로 애용할 필요가 있다. 집식구와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벽에 붙어 있는 《커피는 셀프》라는 표어를 보면서 40 ,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의 말씀이 떠올라 심심풀이삼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보았다.




출처: 한국 장로 신문 http://www.jangro.kr/Jculture/


참고: 1969~1978년 10년간 신일에서 가르치다가 잠깐 미국에 다녀온 후, 대전 목원대학교에서 20년간 봉직. 2005년 8월말 정년퇴임 이후, 대전에서 <문정번역원>이라는 번역사무실 개설 운영. 본 내용은 금년 2년째 한국장로신문에 "신앙산책"이라는 칼럼에 격주로 올리신 글이다.


문정일 교수 약력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Northern Arizona Unviversity 대학원,세종 대학원 졸업. 숭실고, 신일고 영어교사 목원대 영문학과 학과장, 영자신문사 주간, 기획실장, 인문대학장, 교무처장, 대학원장 역임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 번역상,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학 번역상, 코리아 타임스 한국문학 번역상 수상. 저서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since 1945>,<Ambassadors for Chirst>, <Controlled English Writing>, <What is a church for?>, <벌거벗은 사람들> 등. 현재 대전 성지교회 장로, 목원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