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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버지의 날 애틀랜타 김동식 원로 은사님 글


미국 아버지의 날 애틀랜다 김동식 은사님 글

오늘은 아버지의 날입니다. 아버지의 날을 맞으면, 박찬석 전 경북대학교 총장의, “아직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1994년 에서 2002년 까지 8년간 경북대학교 총장으로 재임중에 여러 언론사에 기고한 글 중에서 이 글은 진솔하고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겨 소개합니다.

아직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경남 산청은 나의 고향이다. 산청은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엔 영 취미가 없었다. 공부 하기가 싫었다. 그럭저럭 1학년을 마쳤다. 내 성적은 68명 중에 68등, 꼴지였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아버지, 어머니 앞에 내밀 자신이 없었다. 어버진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도저히 이 성적표를 그대로 내어놓을 수가 없었다. 궁리끝에 성적표를 68명중에 1등으로 고쳤다. 그 성적표를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일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아버지의 친지들이 우리집으로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했더냐”고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일등을 했는가배”라고 하셨다. 그 말에 아버지의 친구분들은,“자넨 자식 하나는 잘 두었네 그려. 아, 일등을 했으면, 책걸이를 해야제”라며 모두들 좋아 하셨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다음날 마을 앞 강에서 멱을 감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나는, “아부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강가로 나온 나는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쉬고 버텨보기도 하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려치기도 했다. 뛰는 가슴을 진정 할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에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 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어무이예…저 중학교 일학년 때 일등은요…”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민우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교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런 글입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철 없던 중학시절에, “사전사게 돈주세요”, 그 다음 날엔, “콘사이스 사게 돈주세요”, 또 그 다음 일주일 후엔 “Dictionary사야해요, 돈 주세요”라 할 적마다, 가지신 돈 닥닥 긁어 기쁜 마음으로 선듯 내 주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그러고 나는 자라서 고등학교의 선생이 되었습니다. 아버님께 지은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나는 남을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젠 옆에 계시지 않아 용서를 빌 수도 없습니다.

6. 21.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