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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5회) 초강 이범석 평전 출간





불행했던 현대사의 단면
그 시간을 살았던 외무장관 이범석의 생애


이 장관님은 평생을 나라를 위해 바치신 분이다.
업무에 관한 한 매우 치밀하셨고, 부하들에게는 엄하셨다.
그렇다고 엄하시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너그러울 때는 한없이 너그러운 면모를 보여주셨다.
유머도 뛰어나셨고, 통도 매우 컸던 분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나는 현충원에 마련된 형의 묘비에 비명을 쓰면서
이렇게 한마디 적었습니다.
그가 갈라진 국토의 통일을 위해 진력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평양 가는 열차의 첫 기적소리 울릴 때 일어나세요”라고
누워 있는 형의 부활을 기대하였습니다.
―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내가 접촉했던 이 장관은 외유내강한 분이었다.
실제로 그와 접촉이 있었던 많은 분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을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형님 같은 분으로 대하곤 했다.
 마음 따뜻하고 인간미 가득한 분이었다.
―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 장관


"이범석 전 외무장관과 생전에 교우했던 이들의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으며 그가 세상에 남긴 흔적도 여전하다. 1925년에 태어난 이범석 전 외무장관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스무 살이 되던 해 광복을 맞았으나 남북이 갈라지면서 실향민 신세가 되었다. 6·25전쟁 때 부산 피난 중 적십자사에 몸담아 수행했던 유엔군 포로송환 교섭 업무나 일본의 북송교포 송환 저지 노력에도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라는 말이 있듯, 이후에도 이범석의 생애는 순탄하지 않았다. 4·19혁명 직후 외무부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신생국의 비애를 겪어가며 분단 현실에 부딪쳐야 했다. 튀니지 대사에서 돌아온 뒤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지금껏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이산가족 상봉 회담의 첫 초석을 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도 대사 시절에는 베트남에 억류됐던 우리 공관원들의 송환을 위해 북측 대표들과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기도 했다. 그 자신이 실향민인 입장에서 마음 편치 않은 나날이었을 것이다.통일원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며 차근차근 외교적 성과를 쌓은 이범석은 능력을 인정받아 외무장관의 자리에 오르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생애를 마지막 장식하는 활동 무대가 되었다. 북한의 공작으로 인한 아웅산 묘지 테러사태로 목숨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에 태어나 고난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그의 마지막도 결국 우리 역사의 그늘진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이범석은 평생 한결같이 남북관계 개선에 헌신했고 외교관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한없이 약했던 당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외교력을 갖추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초석이 다져진 데는 이범석의 공로가 빠질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희생이 더욱 뼈아픈 것이다. 이 책 《초강 이범석 평전》은 이범석의 생애를 알리는 의미가 있지만 이를 계기로 그가 어렵게 헤쳐 간 지난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뜻도 함께한다.

<채륜 2018.10.02. 17:5243 읽고 작성>




저자 : 허영섭. 언론인. 현재 〈이데일리〉 논설실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쳐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이력도 있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일본 조선총독부 세우다>, <법이 서야 나라가 선다>, <조선총독부 그 창사 건립의 이야기>, <50년의 신화>, <정부영 무릎 꿇다>, <빙여길> 등